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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산딸나무
김영주 2019-06-27 02:09:14 조회 : 224
내가 일을 하는 마트 건물 뒷켠에 작은 화단이 있다. 작은 공간에 마사토를 가득 채워두고 심은 건 산딸나무 두그루가 초라하게 심겨 있었다. 관리는 고사하고 이웃 마냥 엉겅퀴나 망초같은 잡초들이변을 메웠다. 공장이 늘어선 동네라 공기가 좋지 않았고, 소통 할 나무는 건물 반대편에 라일락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여름 즘이면 가지 끝에 꽃을 밀어냈다. 향이 진하진 않았지만 상아빛의 꽃잎이 고고한 자태를 뽐냈다. 응달에 자리를 잡았지만 자신은 여기 존재한다는 외침같아 멋지다 싶었다. 그런 산딸나무가 올해는 꽃을 피우지 않았다. 처음엔 좀 늦는 건가 했었는데 잎만 무성하게 달려 있었다. 열매를 맺을 시기가 되자 매달린 잎들은 화난듯 붉게 익어 있었다. 꽃이 피면 그 아래엔 열매가 자랐다. 처음엔 생기넘치는 초록으로 있다가 완숙한 빨간색으로 익어갔다. 올해는 꽃이 없으니 열매도 없겠구나 생각하니 왠지 울화가 일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나무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던것 같다. 수령이 얼마나 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생의 궤적이 비슷하게 흘러 왔으리라는 막연한 확신을 하고 있었다. 타인의 의지로 뿌리를 내리고 온힘으로 외치고 있으니 아무도 들어주는 이도 없고 돌아보니 모두들 각자의 방식으로 꽃을 밀어내다 포기 했다는 사실에 절망한 듯한 피투된 삶을 오롯이 견디고 있다고 단정했다. 그야말로 ‘기능적 생’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무에게 뜻하지 않는 동병상련 이라는 상처를 주고 그에게서 시선과 마음을 거두어 갔다. 바라 보기만 해도 거울을 보며 상처에 손을 대 아물지 못하게 하는 것만 같아 괴로웠다.

유월이 저물어가고 하지를 지난 무렵 사이토 마리코의 시집을 서가에서 집었다. 광합성이란 시를 읽었다.

[광합성]



  “ 한국에 오기 전에 나는 모든 책을 팔아버렸다. 헌책방 할아버지가 내 방에 와서 내가 십년 동안 간직하며 이사 할 때마다 질질 끌고 다닌 글자의 떼를 모조리 데리고 가셨다. 잘 가요, 내 책들아. 그것은 무척 무거웠다. "책이란 참 무겁군요." 내가 말했더니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럼요. 아무래도 원래가 나무였으니까요."
   그리고 나는 책 한 권 안 가지고 여기에 왔다.”

   나무를 일본말로 KI라고 하며 한국말로는 NAMU라고 한다. 십년 전에 처음 한국말을 배웠을 때 '나무'란 낱말이 나의 가슴속으로 뿌리를 내렸다. 한국에 온 지 두 달 동안 줄곧 아래만 보면서 돌아다녔는데 유월이 되고 처음으로 눈을 들어 봤더니 그들이 잎사귀를 살랑거리며 서 있었다. 그들을 '나무'라고 부르면 내 속에서 '나무'가 답례했다. 십년 공들여 간신히 푸르게 자란 잎사귀들이 눈부시게 펄럭이면서.

   "한국에 유학 가기로 했어요. 이 년이나 지나야 돌아올 거예요." 내가 그렇게 했더니 할아버지는 책에 쌓인 먼지를 닦으면서 말했다. "그 무렵에 나는 살아 있지 못 할 거예요." 그리고 꾸린 책을 헌 트럭에 싣고 나갔다. "잘 가시오, 열심히 공부하세요." 하면서. 그가 평생 동안 얼마나 책을 사랑하면서 살아왔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할아버지가 전에도 책을 사러 내 방에 왔을 때 한 사회심리학 책을 들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은요 삼 년 전만 해도 잘 팔렸는데 요즘은 통 안 나가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안 팔기로 할게요. 사실은 저도 아직 안 읽어봤거든요." "그게 좋을 거예요. 책은 읽으시는 분이 갖고 계시는 게 제일입니다."
   그래도 끝내 그 책을 읽지 않은 채 나는 떠나게 됐지만.

   여기 와서 나는 또 많은 책을 샀다. 나무 밑에서 책을 읽으면 잎사귀 사이로 비치는 햇볕 모양대로 생각이 흩어져 간다. 한 권의 책은 많은 나뭇잎들의 역사로 가득 차 있다. 말을 잃어버릴 때야 침묵은 어느 말도 아니며 어느 말이기도 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다.
   한 권(券)의 말이 한 그루 나무의 삶과 어울릴 줄 안다면 어느 말이라도 좋다.
   말이 한 그루 나무의 내력을 지켜줄 줄 알고 그 나무를 키웠던 지하수 한 방을 한 방울까지도 엎지르지 않고 괴롭히지 않고 삼켜줄 줄 안다면.

   다른 나무들이 다 벌거벗게 된 다음에도 푸른 잎사귀를 살랑거리며 서 있는 가로수 한 그루. 그것은 끝까지 눈물이 마르지 않는 눈과 같다. 또는 눈뜬 사람들 속에서 홀로 명목(暝目)하는 사람 같다. 나무들이 가장 싱싱하게 살아 있어 보이던 그 유월에는 다른 어느 나무와도 다름이 없게 보였던 그 나무. 그리고 다음날 내가 본 것은 그 나무 잎사귀 사이사이에 모여 앉아 지저귀고 있는 참새들. 설레는 가슴처럼 들끓으며 서 있는 가로수 단 한 그루. 마치 말이 되기도 전에 사상을 달래는 꿈과 같이.”

잠시 그 산딸나무를 지긋이 바라봤다. 잎사귀들 사이로 빛이 콘크리트 바닥에 내려 앉았다. 나는 글자처럼 그 말을 읽으려 했다. 나무는 나무의 생을 포기 하지도 않았고, 스스로 비참해지려는 누군가의 마음을 대변하려 하지도 않았다. 피투된 운명은 사실이지만 잎이 무성하게 피던 꽃이 피던 그저 광합성을 하는 나무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저 시간과 바람과 햇살을 필사해 넣은 한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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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와있어 여름잠